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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 바람의 손자에서 메이저리거까지

by 써니엔 2024. 2. 20.

 

이정후 선수는 2017시즌 한국프로야구에 데뷔했다. 히어로즈 구단 출신이고, 그해 프로야구 동기로는 김혜성, 고우석 선수 등이 있다. 이정후 선수는 키가 185cm에 몸무게 85kg인데 프로에 와서 상당히 증량한 케이스이다. 2023시즌이 끝난 후 메이저리그 구단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계약했다. 그동안의 한국인 출신 메이저리거 11명중에 가장 높은 금액으로 진출했다. 자이언츠는 6년 1억 1,300만 달러의 초대형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리고 최근 기사에서 이정후 선수가 개막전 톱타자로 나간다고 보도가 되었다. 이종범의 아들로 처음에 유명했던 그가 아마추어 시절부터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스토리를 알아보자.

 

1. 아마추어 선수 시절

이정후 선수는 1998년 8월 20일에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에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였던 이종범이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선수생활을 할때 태어났다. 원래 당시 이종범 선수의 별명이 '바람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이정후 선수의 별명도 자연스럽게 '바람의 손자'로 정해졌다. 학력은 광주서석초등학교, 휘문중학교,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해 프로에 입단했다. 

원래는 살레시오초등학교에 다녔는데 재학 도중 어머니와 함께 야구부가 있는 광주서석초등학교에 가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아버지인 이종범 선수는 스프링 캠프 도중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야구부에 들어가서 활동을 시작했다.

2010년 제7회 기아타이거즈가 주최하는 호남지역 리틀 야구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당시 6학년이던 이정후 선수는 구원투수로도 결승전 승리투수가 되었다. 또한, 이 대회에서 투수와 유격수 모두 활약하면서 타율은 0.667에 7득점 4타점 3도루를 기록했다. 투수로는 3승을 챙기면서 결국  최우수선수인 MVP로 선정되어 트로피와 글러브를 수여받았다. 

그 후, 이정후 선수는 무등중학교에 다니다가 중학교 2학년 후반에 서울로 이사가게 되면서 휘문중학교로 전학갔다. 휘문중학교에서는 계속 주전으로 뛰면서 입지를 다졌다.

이정후 선수의 아마추어 시절을 보면 공격력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다는 평가가 많았다. 휘문중으로 전학오기 전 무등중학교 때부터 각종 타격상을 수상했다. 휘문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는 1학년 때부터 주전을 차지하면서 그 해 바로 봉황대기 우승에 키맨 역할을 했다. 당시 타율은 3할3푼을 기록했다. 당시에는 고등학교에서 잠재력이 가장 뛰어난 1번타자로 이정후 선수가 많이 지목되었다.

아버지가 정말 유명한 이종범 선수이지만 그를 떠나서도 고교 최고의 1번 타자로 뽑혔다. 하지만 그에게는 2가지 단점이 있었다. 바로 장타력과 수비력이 많이 약한 것이었다. 타격실력이 매우 뛰어났지만 당시 이정후 선수의 포지션은 유격수였다. 수비부분에서 안정성을 필요로 하는 유격수였지만 풋워크가 등 스텝이 많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버지인 이종범조차도 수비에서는 한참 배울점이 많다고 얘기했다. 이정후 선수의 마지막 고교무대였던 2016 봉황대기 결승전에서도 수비에러를 2개나 기록했다. 

이정후 선수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서울 연고지인 넥센히어로즈의 1차로 지명된다는 소문이 있었다. 결국 소문대로 2016년에 진행된 1차 신인 지명에서 넥센히어로즈에 1차로 지명되었다. 이를 통해 최초로 아버지와 아들이 1차 지명이라는 진기한 신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이후 넥센에서 2억원의 계약금을 받고 계약했다. 2016년말에 넥센 히어로즈의 마무리캠프에 참여했다. 당시 나고시마로 떠나게 되었고 함께한 신인선수는 김혜성 선수밖에 없었다.

2. 프로 이후

2017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시범경기에서 이정후 선수는 엄청난 활약을 했다. 당시 주전 외야수였던 임병욱 선수의 부상까지 겹쳐서 주전 외야수로 개막전부터 뛸 수 있었다. 그 시즌에 고졸 신인 최초로 144경기 전경기를 출장했다. 또한 고졸 신인으로는 최초로 3할 기록, 최다 안타, 최다 득점 등 신인으로써는 믿기 힘든 활약을 보여줬다. 안타수는 179개로 전타자 중 3위의 기록이었다. 이 기록으로 2017시즌 신인왕을 수상했고, 김태균 선수 이후로 10년만에 순수 고졸 신인왕이었다.

2018시즌에는 여러 부상들에 시달리면서 109경기에 출전하긴 했지만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다. 외야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지만 논란이 있었다. 그 이유는 당시에 기록이 더 뛰어났던 김현수, 로하스 주니어를 뛰어넘고 받았기 때문이다.

2019시즌에는 마지막까지 두산의 호세 페르난데스와 최다안타 경쟁을 펼치면서 2위에 머물렀다. 그해에도 이변없이 외야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당시 플레이오프에서도 SK와이번스를 상대로 타율 0.533을 기록하면서 MVP를 수상했다.

2021시즌은 첫타격왕을 차지하면서 최초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타격왕을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때도 놀라운 기록을 보여주면서 4년 연속 외야수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이정후 선수는 그동안도 뛰어난 기록을 보였다가 2022시즌은 그중에서도 가장 정점으로 꼽힌다. 2010년 이대호 선수 이후로 타격5관왕을 달성했다. 또한, 깨지지 않던 기록인 장효조의 통산타율 0.331을 제쳤다. 포스트시즌에 가서는 kt위즈와 LG트윈스를 꺾으면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2023시즌은 시즌 이후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겠다고 밝히면서 이정후 선수에게는 중요한 시즌이 되었다. 하지만 MLB를 고려해서 타격폼을 바꾸면서 부진에 빠졌다. 하지만 5월부터 원래 타격폼으로 돌아오면서 원래 기록으로 돌아왔다. 후반기에는 발목부상으로 공백기가 찾아왔지만 9월달에 1군에 다시 동행하면서 히어로즈 팬들과의 작별인사를 펼쳤다.

 

다음 포스팅은 이정후 선수의 메이저리그 포스팅 과정에 대해서 알아보겠다.